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일단 답변 to 박재현님

[박재현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순화된 표현 사용이 적절할듯 합니다. 제 경험상 아무리 좋은 '의견'일지라도 격한 표현을 쓴다면 설득력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과는 관계 없지만 제가 듣는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대책이 있는 행동은 용기지만 그렇지 못한 행동은 객기다. 용기는 일렬의 행동들이 모여서 빛을 발하는 것이지만 객기는 단편적인 행동이다'

형제님이 결단코 신축되기 전에 교회를 떠난다고 하셨는데, 영혼을 양육하는 리더로서
1) 그에 대한 대책은 세우셨는지,
2)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교회의 몸'된 다른 리더들과 간사, 그리고 조원들 친구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런지 한번 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생각과 형제님의 생각이 100% 일치할 수는 절대 없겟지요. (저도 반년째 영어예배 참석중...) 아마 우리네 인생을 통틀어서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은 크나큰 비극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신앙의 삶의 최종목표가 '교회건축'도 '의견조율'이 아닌 어디까지나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일진데, 목사님의 말씀의 논리가 어쩌구 법이 어쩌구 '순종'을 강요한 교회의 부당성이 어쩌구...

다른 인간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예수님에 비추어 볼 때 바른 사람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논란와 로직에 갇혀서 신앙적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겠지요.

 

그리고 한 마디 더. 떠날 때가 되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닌 사람이 그 이후에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를 그렇게 보지 못했습니다. 교회건축의 명분과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합당함을 따지기 전에 저는 솔직히 앞으로 형제님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질지 걱정스럽습니다.


형제님이 어느 곳에 있는 어느 교회를 가던지 형제님의 신앙과 생각에 맞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교회와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오죽했으면 재법이가 미국에 갔겠습니까) 단지 형제님의 발언과 생각이 어느 순간에 만성화가 되어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할까봐 염려스럽습니다. 지금보다 딱 세 걸음 뒤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두 걸음 뒤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떠하셨을까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결단코’ 자신이 무슨 행동을 취하겠다고 하신 것은 기억이 안나는 군요. 오히려 그 분은 결단코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순종하신 것 밖에는...)


사실 아는것도 별로 없는데 이런 글 써서 죄송할 따름이며, 혹시라도 정 답답하면 제가 삼겹살이라도 사드리면서 얘기 들어드리겠습니다. 010-5107-5234 (소시짱)

 

=> 과함한 표현이 설득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견,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로서도 약간의 도발의 의도는 있었는데, 글 작성후 (소심한 A형인지라) 취소선을 그었지만, 오히려 생각보다 도발의 성격이 약함에 대하여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온당치 못한 방법인 것 반성하고 있으나, 저의 최소한의 감정 표현이었고 이렇게 해서라도 최대한 리더님들의 의견을 도출해 내고 싶은 저의 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두가지 질문에 대하여 답변드리겠습니다.

먼저 '1) 교회를 떠난다는 것에 대한 대책은 세우셨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2004년 새돌때부터 대형화된 교회의 대학부에서의 피상적 인간 관계에 대하여 어느 정도 회의를 느꼈고, 2006년 3학년 중반기 이후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과의 인간 관계가 멀어질 정도로 안좋은 상황을 겪으면서 사랑의 교회 이후의 다른 공동체에 대하여 이미 고민을 해왔습니다. 뭐, 저의 성격파탄이라거나 사회성 미숙의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로서는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저로서는 다음 공동체에 대하여 계속하여 생각을 해 두었고, 지금까지 대학부에서 생활을 해오면서 '언제라도 떠날 마음의 준비'는 해놓은 상태입니다. 더군다나 리더를 내려놓은 지금 상황에서 걸릴 것이 없는 것이지요. 다만 제가 아직까지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제가 여러 리더들(리더서임 전 4텀, 쉬는 리더동안 3텀째)의 섬김과 교역자, 간사님들, 학년장, 그리고 대학부지체들의 은혜를 공급받았고, 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제가 섬길 수 있는 자리에 부족하게나마 남아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대학부에 대한 마지막 선물을 고려하고 있는데, 이건 삼겹살 뜯으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제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은 이렇고, 여타 지체들에 대한 영향으로서는, 오히려 제가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방향성을 상실한 채 단순히 '순종'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좇는 것은 조원들에 대한 대단히 비모범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크리스천으로서 올바른 판단력을 가져야 하고, 이에 대해서는 기도와 더불어서 행동력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간에는 불순종은 미덕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편협된 시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 신부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당시 기독교는 그리스 정교, 성공회와 더불어서 천주교가 존재하였으며, 이에 반하는 것은 '불순종'이자 '파면'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마틴 루터 신부님은 천주교에서의 행동이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겠지만) 성경에 반한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따라 '불순종'을 택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순종이 곧 기독교의 미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판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앞뒤 제쳐두고 오정현 목사님의 결정을 따르는 것에 대하여, 다시 말해서 (물론 기도가 뒷받침된 상태에서) 본인의 생각에서 이러한 일들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설 때에는 그에 대한 대응적 행동을 조원들에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리더의 본분입니다. 물론 교회에 속한 입장에서 리더가 소위 '반동적인'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단순히 '반대'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있다'라면서 반대 입장을 표현하는 행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예정대로 건물이 지어지고, 본인이 더이상은 이 교회에서 내가 원하는 본질을 찾을 수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이상 혼란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떠나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떠난다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하였고, 지속적인 기도에도 그러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더이상 상처받을 필요 없이 미련을 버려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2)의 질문에 대해서는 1)의 답변 후반부와 비슷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단순히 윗분들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를 할 줄 아는 리더가 되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길이 되는 것이고, 거꾸로 말하자면 단순히 교회가 움직이는 대로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을장님이나 간사님 급 정도 되면 체제 유지를 해야 한다는 대학부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더는 그동안의 제자훈련을 바탕으로 확립된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교회 내에서 'NoNos'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감을 느끼고 행동하는 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Nonos'와 '위기감'에 대해서는 권신영 간사님에 대한 답변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교회 내에서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그저 타협을 하게 되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교회가 비닐하우스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하니까요.

 

 하하하, '순종'을 강요한 어쩌구 저쩌구가 아마도 재현형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종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단순히 이 일에서 빡돌아서 언급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에서 순종이라 함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에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 순응하며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르신다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그러한 순종입니다. 그러나 일부 권력층들(물론 제가 언급한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인정한 로마를 포함한' 정치가들과, 정교일치를 표방한 암흑시대의 유럽 교황/왕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일부 목사님들)에 의해 이러한 순종은 단순히 '윗사람/목자의 결정에 복종하는 것'으로 와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회 시스템에 대한 여러가지 이의 제기와 개선점들을 제기할 때마다 들려오는 '순종해야 한다'와 '기도해 보자'의 답변은 저로 하여금 지치게 만들었고, 더이상 교회를 나의 것이 아닌, 그저 내가 속한 곳으로 그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이는 대학부도 예외가 아니고, 현 교역자에 그친 문제도 아닙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 이르러 점점 커져가는 문제점/위기감 속에서 그저 현 체제를 고집하고 점점 시스템이 고착화 되어가는 것에 대해서 저는 소속감마저도 잃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건축 문제가 거론 되었을 떄 폭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대학부야 워낙 변화무쌍안 상황이니 그렇다 쳐도, 교회의 보금자리문제마저도 (전문가 혹은, 여러 정보들의 회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저 윗쪽에서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이니 따르라는 것은, 현 정권의 4대강 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발언 죄송합니다.)

 

 다른 인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서 제가 주로 취하는 방법은,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저로서도 방금 언급하였듯이 '순종'에 대하여 막말을 했지만, 정말로 순종을 그렇게 이용했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느끼려 했습니다. 그래서 위의 문제의 블로그의 건축관련 글들과 답변들을 싸그리 인쇄하여 오늘 새벽동안 읽었습니다. 내일까지 논문 마감의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어쨌거나 지금보다 늦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200쪽 넘어가는 분량을 읽었습니다. 이미 오정현 목사님께서 지난 예배 6부시간에 저 블로그 내용 반박하라고 (백기사가 되어달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언급하였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블로그에 답변을 달았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기준 자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블로그 주인인 유정훈님과 다수의 네티즌들은 여러 자료와 실제적 상황을 토대로 우려를 나타내었고, 그에 대한 반박 리플들은 상대편이 막무가내로 건축을 반대하거나 심지어는 사단, 마귀의 단어를 사용해가며 자신들의 주장을 깍아내리는 행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개중에는 그래도 이미 시작한 일인데, 기도합시다라며 다독여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여기서 잠시 샛길로 빠지고자 합니다. (딴소리라며 눈살을 찌푸리시는 분은 , 그냥 제가 변명하나보다 하고 생각하시며 자연스레 다음 단락으로 너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왕년에 정치인이자 환경운동에 영향력을 끼치는 '엘 고어'의 저서 중 하나인 <불편한 진실>을 읽어보셨는지요? 엘 고어는 어린 시절에 도시와 농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학교에서 수온 상승에 관하여 문제의식을 가진 교수님을 만나면서 자신의 인생을 환경 쪽으로 완전히 매진하게 된 사람입니다. 이 분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왔나교요?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에서는 수십년간의 수온 상승, 홍수, 엘니뇨, 토네이도 등등의 이상기후의 증거들을 보이면서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정치권에서는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과학계에서는 검증도 안되는 논리의 자료로 지구 온난화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습니다.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미국 대다수 기업에 대하여 경제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언론들은 과학계에서 지구 온난화에 다하여 의심을 한 저널이 단 한 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논리와 샛길로 빠지는 언변을 통하여(262~265쪽) 마치 지구 온난화냐 아니냐를 놓고 과학계가 양분되는 것처럼 여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대하여 회의 느끼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하여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 심지어는 이미 망쳐버린 지구 까짓거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에서의 상황도 이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통의 문제요? 사랑의 교회에서는 이미 주차장, 주차타워, 각종 학교, 그리고 강남에서의 상권을 이용한 다양한 주차장들(일례로 교보문고에서 주간지 하나 사면 2시간 무료주차)들을 이용하여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고, 그 외의 도보의 불편함을 돕기 위해 이미 2호선 강남역, 9호선 신논현역이 포진해 있고, 중앙차로의 수많은 버스 노선, 그리고 기타 빨간노선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초동의 신축 부지는요? 거기는 서초역이 가깝다는 이유로 주차장 건설이 불투명하거나 적어도 지금의 주차공간보다는 적으면 적었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교육관 문제는요? 신축 부지는 건물 높이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2000평에서 대예배, 주일학교, 대학부, 청년부 전부를 소화하지 못한다는게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미니스트리 센터를 표방하면서 각국 인테리어를 본딴 공간까지 만든다고 하니 더더욱이나 공간의 부족이 여전함은 자명한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광고를 하였으니, 조금은 나아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benefit이 과연 2500억의 투자가치가 있는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제 아무리 주님의 예배당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금전의 가치에 대해서 소홀히 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금전을 중요시 여긴 것에 대하여 노하셨지요. 이렇듯, 교회에서는 부지를 옮기는 것이 현 상태의 모든 상황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이는 속담으로 따지면 '눈가리고 아웅'이라 할 수 있고, 정치 용어로 말하자면 '프로파젠다'라고 일컫습니다.

 그리고 이미 땅을 샀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의견에 대해서는, 저는 거품을 물고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고 기도하고 땡이 아니라, 어떻게든 문제점을 직면하고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이냐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본다면 이것도, 문제점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벌어진 일이라고 놔두면, 정말로 교회가 본질을 잃고 규모의 환상에 빠져, 더이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때가서 후회하고 나오느니, 차리리 지금이라도 더욱 돌이키기 어려워지기 전에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떠날 때가 되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닌 사람이 그 이후에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맞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교회를 쉽게 떠나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서도 자그마한 불만족 때문에 다시 떠나기 쉽죠. 저와 같은 경우에는, 이미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었고 다음 공동체로 예정한 곳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말을 여기서 해봤자 득이 되지는 않겠죠.

 일단은, 제가 떠나겠다고 한 발언은 약간의 도발의 의도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제가 교회의 결정에 대해서 납득을 하지 목하겠다는 감정의 표현이고요. 어쨌거나 과한 표현이었음은 제가 계속하여 사죄를 드립니다. 그러나 사랑의 교회에서 소통이 부재된 채 계속하여 신축 부지의 결정을 밀고 나간다면 적어도 2012년 이전까지 제가 사랑의 교회에 남아있지 않을거라는 의향은 변치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오정현 목사님께서 지금 이대로의 마인드를 계속 가지고 계신다면 제가 신축된 사랑의 교회에 모습을 보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제가 막무가내로 떠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서가 아니라, 교회에서의 본질이 이미 변질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교회의 핵심가치는 제자도입니다. 이러한 제자도는 제자훈련이 바탕이 되며, (재현형님이 오랜 대학부 생활을 통해서 아시겠지만,) 제자훈련의 규모가 적고 강력할 때에서 나오는 것이지,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리더를 찍어내는 양상'에서는 그러한 의미가 퇴색되고 점점 질보다는 양에 치중하게 됩니다. (이는 대학부 디렉터인 백승준 목사님께서도 수차례 언급하신 적이 있으니, 욕먹을 각오하고 언급합니다.)

 실제로도 옥한흠 목사님께서 이번 월 디사이플스지에 인터뷰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언급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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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 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
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2만 3천명, 전체 등록 교인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저의 교회론에 일치하는 목회를 위해서 적정 수준의 교회 사이즈를 유지했으면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했느냐고 묻는다면, 인위적으로 교인수
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교회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려서 최대한의 수확을 거두는 것은 영적 농사인 목회에도 그대로 적
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교회 사이즈를 획일화해서 성장을 억제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2천 명이 넘어가면 제 교회론에 일치하지 않는 목회 즉, 잘못하면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지도자를 세워 독립시켜 사랑의교회와 같은 교회론을 가진 제2, 제3의 사랑의교회를 뿌리내리도록 했으면, 지금과 같이 실패했다는 감정을 갖지 않
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
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후임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담임목사 한 사람이 아무리 조직
을 튼튼히 해서 자신과 같은 분신 부교역자 수 백명과 함께 사역을 한다고 해도 규모가 너무 비대해 버리면 한계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 쭉
정이가 나올 수 있고 본질이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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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도 그 '찍어낸' 리더 중에 한명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사랑의 교회의 일원으로써, 교회의 핵심가치인 제자도를 따르고자 주장할 자격은 쥐꼬리만큼이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목사님께서 뒤에서 '교회가 초대형화되어도 알찬 제자들이 나온다면 금상첨화'가 된다고는 언급하셨디만, 이러한 은혜가 지속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으셨습니다.

 뭐, 제가 옥목사님 인터뷰를 인용하고 '자 봐라'식으로 언급한다고 해서 옥목사님을 신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를 신축하여 규모를 늘려서 더 많은 역할을 해보자'는 입장과, 현재의 규모를 유지해서 제자도라는 교회 본래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입장 중, 후자가 더욱 사랑의 교회의 역할에 맞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형님 말대로 교회와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교회로 부르셨고, 이러한 의견들이 존중되어야 하지,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오목사님을 굳이 지칭하지는 않았음)에 의하여 교회가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확실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사랑의 교회 장로층이 이미 꼭두각시가 되었거나, 건축에 대하여 관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공동체이니 만큼 (기도하는 가운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축의 현황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고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예수님이라면......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예수님께서 성전의 장삿꾼들에게 한 행동들이 먼저 떠오를 뿐입니다. 예수님은 약자/순수한 어린아이에게는 한없는 포근함을 주셨지만, 본질을 벗어난 자들에게는 가차없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삼겹살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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